이진아 - '계단'
이진아는 참 독특한 아티스트다. 처음에 이진아라는 아티스트를 접했을 때는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생각나서 또 보러오게 되고, 다음날에 또 듣게 되는 매력을 가졌다. 듣다 보니 내가 처음에 낯설다고 느꼈던 부분조차도 그녀의 매력 포인트가 된다. 이진아의 음악은 들을 수록 깊이 빠지게 되는,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이진아를 대중에 알리게 된 계기는 케이팝스타 시즌 4이다. 그때 '시간아 천천히'라는 자작곡을 들고 와서, 재즈 기반의 독특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어우러지는 맑고 어린 목소리는 그녀의 개성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주류가 아닌 장르로 대중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걸 해냈다는 것부터 그녀의 천재성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가냘프고 조곤조곤한 탓에, 그녀릐 음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였지만, 그러한 편견을 깨뜨리고 그녀의 음악에 흥미를 느끼게 된 노래가 바로 이 '계단'이라는 노래 덕분이다.
'계단'이 수록되어있는 EP 앨범 'RANDOM'은 2017년 7월 20일에 발매되었다. 진아식당 3부작 중 2번째 앨범으로, 메인디쉬를 담당하고 있다. 비록 타이틀곡은 '계단'이 아닌 'RANDOM'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계단'을 더욱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계단'은 처음부터 낮은 피아노 건반을 베이스처럼 사용해서 힘있는 연주로 시작한다. 그 힘있는 피아노 연주에 발맞춰 강렬한 드럼 사운드가 함께 어우러지다가, 갑작스레 노래의 분위기는 밝아진다. '계단'은 이 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듬뿍 담긴 곡이다. 이진아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멜로디를 대중적이게 하고, 코드 진행을 복잡하게 가져가는 이진아만의 재즈팝인데, 그 매력을 이 노래에서 마음껏 느낄 수 있다.
'계단'이라는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도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다. 앨범 소개에서 그녀는 '계단'이라는 노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단'이라는 주제로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살아가는 삶에 비유해보았고, 피아노 연주도 계단처럼 튼튼하게 연주하려고 힘을 썼어요. 잘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우리 모두 같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보아요.
이 음악의 가치는 노래를 함께 들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그녀의 여린 목소리와 순수한 가사를, 마치 힘 있는 피아노 연주가 받쳐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진아가 아니기에 그녀의 감정, 삶의 자취와 같은 개인적인 것을 모두 알 수 는 없지만, 나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녀가 버텨가는 방식이 이 음악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진아처럼 외부 집단으로부터 '착하다', '귀엽다', '화를 잘 못 낸다', '순수하다'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은 때로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항상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심지어는 이를 악용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아는 그러한 자신의 특성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면적 성숙을 이루었다고나 해야 할까. 이진아처럼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사람"들을 우리는 '아웃라이어(Outlier)'라고 부른다. 그녀는 평균적인 추세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만, 자신의 색을 탁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대로 빛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고, 그것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그녀의 방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진아와 비슷한 말을 많이 들었던 나는, 이진아의 음악에 특히나 많은 공감을 받았다. 내면의 상처를 너무나 많이 받아서, 차라리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서는 후회할 때도 많았다. 나를 사랑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좌절스러웠을 때,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다. 결국 사랑하는 주체를 바꾸면 된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그것을 예술로 하여금 느끼게 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정도로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내면을 단단하게 굳혀갔다. 외부 집단으로부터 흔들리지 말고, 내가 가진 모습을 포기하지 않기로, 그렇게 다짐하고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진아의 음악에는 여전히 순수하지면서도 성숙한 음악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그녀의 음악적 가치관은 나와 잘 통하는 것 같다. 삶을 지나올수록 성숙해져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순수했던 우리의 옛 모습은 아직도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꾸준히 지속해나간다는 것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나도 음악을 하는 만큼은 순수해지고 싶다. 어쩌면 세상을 마냥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비관적인 나를 바꿔나가고 싶었던 마음으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다. 이진아의 음악적 가치관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색깔이 흐려지지 않고 더욱 익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